※ 영화 중요장면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신 분은 이 글을 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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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플레인뷰는 미국 전역에 여러 개의 유정을 가지고 있는 사업가이다. 그는 더 큰 부를 얻기 위해 석유사업을 계속해 나간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석유가 매장된 마을에 대한 정보를 주는 한 청년이 찾아오게 되고, 그는 유정을 찾아 의붓아들 H.W.와 함께 그 마을로 향한다.

대니얼은 부에 대한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큰 부를 얻고 은퇴하여 조용히 사는게 꿈이라고 한다. 그는 여자를 탐하지도 않고, 인간적인 사랑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부에 대한 엄청난 탐욕만을 가지고 있다. 욕심이 많아서 승부욕이 강하고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 대니얼의 그런 성격때문인지 석유사업에서는 큰 성공을 얻게 되었지만, 대신에 내면적으로는 외로운 사람이 되고 만다.

그에게 어느날 배다른 형제라는 사람이 찾아와 아버지의 죽음을 전하다. 대니얼은 그가 의심스럽긴 하지만 형제처럼 대해준다. 그답지 않게 속마음을 터놓는 이야기까지 나누며 잠시나마 위안을 얻는다. 그만큼 그는 외로웠으리라.

하지만 의심이 많은 대니얼는 자칭 형제라는 사람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진짜 형제가 아님을 알게되자 크게 분노하며 살인을 하게 된다. 이 장면은 대니얼의 인간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유정에 화재가 발생하여 그의 의붓아들인 H.W.가 크게 다치게 되는데 대니얼은 아들을 보살피지 않고 유정의 화재를 진압하러 간다. 아들 대신 유정을 선택한 순간 아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되고, 그 사고로 인해 청각장애를 갖게 된 아들을 내다 버리기까지 한다.

대니얼은 이제 아무도 믿지 않고, 살인이라는 죄까지 저질렀다. 탐욕은 고독을 부르고, 고독은 불신을 부르고, 불신은 죄악을 부른 것이다. 그런 그에게 마을의 사제인 일라이는 회개를 요구하고, 그는 교회의 많은 신도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이 장면이야말로 그의 죄악감과 탐욕을 동시에 보여주는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비록 석유사업을 위한 하나의 단계로써의 거짓회개였지만, 달리 보면 인간적으로 가장 진실한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부유한 저택에서 살고 있는 대니얼의 쓸쓸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부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갖지 못한채 외롭게 늙어가는 노인이 되었다. 물질적인 부를 이루었지만, 탐욕때문에 인간불신이라는 정신적인 붕괴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집에서 집기류를 파괴하는 등의 괴이한 행동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심지어 자신을 일부러 찾아와 화해하려는 아들에게조차 마음의 상처를 주는 욕설을 하며 쫓아낸다. 증오하던 사제 일라이가 그를 다시 찾아오자 말로 농락하며 사제의 썩어버린 치부까지 드러낸다. 그리고 그가 무너져가는 것을 보며 즐거워한다.

거짓으로 가득찬 인간들로부터 자기방어적인 세계와 부를 구축하였지만, 거대한 상실감과 고독감 속에서 살아가는 대니얼은 일라이에게 거짓된 세상에 대한 증오를 마지막으로 분출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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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고명진 2012/01/10 20:5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2. BlogIcon 김용대 2012/01/13 11:24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티끌모아 태산